서울역사편찬원, 조선시대 외교 의전은 어땠을까…서울역사중점연구 제20권 발간

서울 / 정충근 기자 / 2026-06-12 12:35:24
사신 접대, 외교 의례, 역관 양성, 외교문서 관리 등 조선 외교 다양한 면모 고찰
▲ '조선시대 한양의 사신 외교' 표지

[뉴스앤톡] 서울역사편찬원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펼쳐진 국제외교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 서울역사중점연구 제20권 '조선시대 한양의 사신 외교'를 발간했다. 이번 연구집에는 외국 사신(使臣)의 방문과 접대, 외교 의례, 통역 인력 양성 등 조선시대 외교의 다양한 면모를 검토한 연구논문 5편이 수록됐다.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는 서울의 역사 중 아직 개척되지 않았거나 연구가 부족한 분야를 발굴하기 위해 2016년부터 기획‧편찬해 온 학술연구서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이 사업을 통해 신진 연구자를 육성하고 서울 역사 연구의 저변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교통과 통신의 제약이 많았던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국제외교는 국가의 입장을 전하는 ‘사신’의 방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절차와 의례 등은 외교 현안을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조선 정부 역시 사신 접대와 외교 의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국 초부터 관련 절차를 규범화했다. 사신을 맞이하는 방식과 의례를 각종 등록과 의궤에 기록하고 이를 엄격히 시행해 외교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조선은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이웃 나라와 화평하게 지낸다는 뜻의 ‘사대교린’을 외교정책의 기본 기조로 삼았다. 이러한 기조 아래 중국 사신 접대는 국가적 사안으로 다루어졌다. 사신 접대를 위한 임시기구를 별도로 설치했으며, 한양의 모든 관아가 접대 업무에 동원됐다. 또한 문장력이 좋은 관리를 선발해 중국 사신과 교류하도록 하고, 이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문집으로 엮어 중국에 보내기도 했다.

‘교린’의 대상이었던 일본과 여진 사신에 대한 접대 역시 국왕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교 행사였다. 조선은 수도 한양에 외국 사신을 위한 전용 숙소를 마련하고, 외교 의례를 제도화했다. 다만 일본 등 교린 관계의 사신은 지방관이 국왕을 대신해 접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국서를 지참한 경우에만 상경을 허락했다.

조선 정부는 외국 사신과의 외교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양성에도 힘썼다. 중국어뿐 아니라 여진어, 일본어 등 당시 교류하던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학습하기 위한 역학서도 제작했다. 특히 중국의 지배 왕조가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자, 역학서에서도 명대 중국어를 공부하는 ‘한학(漢學)’보다 청의 만주어를 공부하는 ‘청학(淸學)’이 중시되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외교문서의 관리도 조선 외교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국 사신이 가져온 황제 명의의 문서는 엄격한 의례에 따라 접수됐으며, 조선은 외교적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이전 문서와 전례를 검토해 대응했다. 이를 위해 외교문서를 관리하는 기관을 왕궁 가까이에 두고, 왕궁 안에도 별도 보관시설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사신 외교'는 서울시청 지하 1층 ‘서울책방’과 온라인 서울책방을 통해 1만 원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번 연구집을 통해 사신을 매개로 한양에서 펼쳐진 조선시대 외교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앞으로도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폭넓은 역사 연구와 발간 사업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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